1970년대 연구비가 끊기고 철저히 외면받던 혹독한 '첫 번째 AI 겨울'을 지나, 1980년대 인공지능은 뜻밖의 돌파구를 찾으며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사람처럼 완벽하게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겠다는 거창한 꿈을 잠시 내려놓고, 아주 현실적이고 기업의 돈이 되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이번 4편에서는 AI의 두 번째 전성기를 이끈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산업 현장을 바꾸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범용 지능을 포기하고 '선택과 집중'을 택하다
초기 AI 연구자들의 뼈아픈 실수는 기계에게 아이들 수준의 상식부터 세상의 모든 이치를 한 번에 가르치려 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당시 컴퓨터 하드웨어의 빈약한 메모리와 연산 능력으로는 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죠.
그래서 학자들은 전략을 바꿨습니다. "기계가 세상 모든 것을 다 알 필요가 있을까? 딱 하나의 특정 분야 지식만 깊게 파고들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라는 실용적인 접근이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특정 분야 전문가가 가진 지식과 추론 능력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한 '전문가 시스템'입니다.
인간 전문가의 노하우를 기계에 이식하다
전문가 시스템의 원리는 생각보다 직관적입니다. 방대한 지식을 모아둔 '지식 베이스(Knowledge Base)'와, 이 지식을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추론 엔진(Inference Engine)'으로 구성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산업 현장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16년 차 베테랑 엔지니어가 복잡한 전기 설계 도면을 검토하거나, 해외 법인의 환경 안전을 관리할 때 사용하는 본인만의 명확한 기준과 노하우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A 구역의 전압 강하가 B 기준치를 초과하고, 주변 온도가 C도 이상이라면, D 장비의 과부하 위험이 있다"와 같은 논리적인 판단 흐름 말입니다.
과거에는 이런 고급 기술 지식과 노하우가 소수 베테랑 기술사의 머릿속에만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 시스템은 이들의 판단 규칙을 수많은 'IF-THEN(만약 ~라면, ~하다)' 형태의 코드로 컴퓨터에 입력했습니다. 덕분에 비전문가나 초급 직원들도 이 시스템에 현재 상황이나 증상을 입력하면, 베테랑 수준의 진단과 해결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업의 지갑을 열게 한 AI의 상업화 성공
전문가 시스템은 학계를 넘어 실제 기업의 비즈니스에 엄청난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당시 유명한 컴퓨터 제조사 DEC(Digital Equipment Corporation)가 도입한 'XCON'이라는 시스템입니다.
당시 컴퓨터는 고객의 요구에 맞춰 수많은 부품을 조립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부품이 누락되거나 호환되지 않는 설계 오류가 잦았습니다. 하지만 XCON이라는 전문가 시스템을 도입하여 조립 구성을 자동으로 검증하게 되자, DEC는 매년 수천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AI가 단순한 실험실의 장난감이 아니라 기업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는 '돈이 되는 기술'임을 입증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의료 진단, 화학 구조 분석, 금융 대출 심사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 전문가 시스템이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다시 찾아온 한계, 스스로 학습하지 못하는 기계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전문가 시스템의 인기에도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치명타는 이 시스템이 최근의 딥러닝이나 대형 언어 모델(LLM)처럼 수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계가 스스로 학습하는 구조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지식이 추가되거나 현장의 안전 규칙이 바뀔 때마다 사람이 일일이 수만 개의 'IF-THEN' 코드를 수작업으로 수정하고 업데이트해야 했습니다. 시스템이 방대해질수록 기존 규칙과 새로운 규칙이 충돌하기 일쑤였고, 유지보수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게다가 숫자로 정의하기 힘든 인간의 직관적인 판단이나 예외 상황에는 속수무책으로 오류를 내뿜었습니다. 결국 인간 전문가를 완벽히 대체하기엔 뚜렷한 한계에 부딪힌 것입니다.
핵심 요약 3줄
1980년대 인공지능은 모든 것을 아는 지능 대신, 한 가지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 시스템'으로 방향을 틀어 부활했습니다.
베테랑 엔지니어나 의사의 노하우를 'IF-THEN' 규칙으로 컴퓨터에 입력하여, 초보자도 전문가 수준의 답을 얻게 했습니다.
AI의 확실한 상업적 가치를 증명했지만, 기계가 스스로 학습하지 못하고 사람이 일일이 지식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치명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다음 편 예고: 전문가 시스템의 한계가 명확해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렴한 개인용 PC 시대가 열리며 기존의 값비싼 AI 전용 컴퓨터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다음 5편에서는 하드웨어 시장의 격변과 유지보수의 한계로 인해 찾아온 '두 번째 AI 겨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생각 나누기: 만약 여러분이 직장에서 다루는 전문 지식이나 일상생활의 노하우를 '전문가 시스템'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떤 분야의 노하우를 컴퓨터에 이식해 자동화해보고 싶으신가요? 자유롭게 댓글로 남겨주세요!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