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편에서는 인간 전문가의 노하우를 규칙으로 입력해 산업 현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던 '전문가 시스템'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인공지능의 두 번째 전성기는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다시금 차갑게 식어버리며 '두 번째 AI 겨울'을 맞이하게 됩니다. 기술 자체의 치명적인 한계는 물론, 예상치 못한 컴퓨터 하드웨어 시장의 지각변동이 겹쳤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수억 원짜리 AI 컴퓨터를 위협한 '개인용 PC'의 등장
1980년대 당시, 방대한 규칙으로 이루어진 전문가 시스템을 매끄럽게 구동하기 위해서는 일반 컴퓨터가 아닌 '리스프 머신(Lisp Machine)'이라는 AI 전용 특수 하드웨어가 필요했습니다. 기업들은 첨단 AI 기술을 도입하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대당 수억 원을 호가하는 이 거대하고 까다로운 장비들을 앞다투어 구매했습니다.
최근 주식 자동매매 프로그램을 24시간 돌리기 위해 저사양의 미니 PC를 세팅하면서, 오늘날의 손바닥만 한 기기가 과거의 거대 컴퓨터를 가볍게 압도하는 성능을 내는 것을 보고 새삼 기술의 무서운 발전 속도를 체감했습니다. 흥미롭게도 1980년대 후반 인공지능 시장을 붕괴시킨 주범 중 하나가 바로 이처럼 작고 저렴해진 '개인용 데스크톱 PC'의 등장이었습니다.
IBM과 애플을 필두로 한 데스크톱 PC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일반 PC의 연산 능력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습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굳이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유지비도 비싼 수억 원짜리 AI 전용 하드웨어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저렴한 일반 데스크톱 PC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소프트웨어를 돌릴 수 있게 되자, 리스프 머신을 만들던 AI 하드웨어 기업들은 매출이 급감하며 순식간에 줄도산했고 하드웨어 생태계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지식 업데이트의 수동화와 데이터의 빈곤
하드웨어 시장의 몰락과 더불어, 전문가 시스템 자체가 지닌 근본적인 약점도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당시의 전문가 시스템은 기계가 스스로 데이터의 원리를 깨우치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이 일일이 "A 조건일 때는 B를 실행해라"라는 수만 개의 규칙을 수작업으로 코딩해 줘야만 작동했습니다.
초기에는 이 방식이 특정 분야에서 훌륭하게 작동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안전 규정이나 작업 환경이 변할 때마다 개발자들이 방대한 코드를 직접 뜯어고쳐야 했습니다. 기존 규칙과 새로운 규칙이 충돌하여 시스템이 다운되기 일쑤였고, 엉킨 코드를 풀고 오류를 잡아내는 유지보수 비용이 시스템을 도입해서 얻는 이익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셈입니다.
더 큰 문제는 현실의 수많은 예외 상황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무한한 변수와 방대한 데이터를 사람이 전부 수동으로 규칙화하여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여 기계에 자연스럽게 학습시킬 거대한 '빅데이터'가 존재하던 시절도 아니었기에, 기계는 입력된 규칙을 조금만 벗어나는 상황을 마주하면 엉뚱한 오답을 내놓으며 그대로 멈춰버렸습니다.
또다시 얼어붙은 투자 자금, 그리고 깊어지는 암흑기
비싼 돈을 들여 도입한 인공지능 시스템이 점차 유지하기 벅찬 애물단지로 전락하자 기업들은 지갑을 굳게 닫았습니다. 1970년대의 첫 번째 AI 겨울 때처럼, 이번에도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비롯한 주요 정부 기관들은 더 이상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AI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막대한 지원금을 전면 삭감했습니다.
1987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이 두 번째 AI 겨울 동안, 학자들은 또다시 논문이나 프로젝트 제안서에 '인공지능'이라는 단어 사용을 기피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연구자와 엔지니어들이 짐을 싸서 업계를 떠났고, AI의 꿈은 이번에야말로 영원히 불가능한 상상으로 끝나는 듯 보였습니다. 적어도 기계가 사람의 개입 없이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스스로' 학습하는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핵심 요약 3줄
1980년대 후반, 기업들이 의존하던 값비싼 AI 전용 컴퓨터(리스프 머신)는 성능이 급성장한 저렴한 개인용 데스크톱 PC에 밀려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사람이 일일이 지식과 규칙을 수작업으로 입력해야 하는 '전문가 시스템'은 잦은 충돌과 천문학적인 유지보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붕괴했습니다.
시스템의 한계로 기업과 정부의 투자가 동시에 끊기며, 인공지능 학계는 1980년대 후반부터 두 번째 혹독한 암흑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다음 편 예고: 인간이 규칙을 하나하나 떠먹여 주는 방식이 철저한 실패로 돌아간 후, 과학자들은 발상을 완전히 뒤집는 도전을 시작합니다. 다음 6편에서는 기계가 데이터 속에서 스스로 정답의 패턴을 찾아내며 AI의 완벽한 부활을 알린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의 부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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